(미디어원=신달파 칼럼니스트) 아버지가 술드시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실 때면, 오꼬시(おこし粔籹 쌀밥풀과자), 센베이과자(せんべい 煎餠)를 사들고 오시곤 했는데, 어떤 날에는 당시로는 무척 귀한 미깡(みかん 蜜柑)을 한 봉지 사다 주시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날은 우리 남매들이 歡呼하며 호사하는 날이었다.

당시 미깡은 제주도에서 溫州柑橘, 洞庭橘등이 소량 산출되어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형제들에게 한 알이나 두 알씩 손에 쥐어주면, 아까워서 일시에 먹지 못하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 것을 먼저 까서 한 쪽씩 나누어 먹고 나머지는 책장 속에 깊이 보관해서 여러 날을 두고 먹던 기억이 난다. 깨물면 폭하고 터져 나오던 귤육즙의 새콤 달콤한 맛은 말로 형용키 어려운 신비롭기까지 한 맛이었다. 모두가 살림살이가 貧寒하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간식으로서의 귤의 존재는 대단한 것이었다, 미깡을 사들고 다닌다든지 먹는다든지 하는 것은 고급함과 부유함을 대변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어렵던 혹한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은 세 끼 식사를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복으로 알고 감지덕지하며 살아야 했다. 고봉밥에 김치, 김치찌개, 김치국이면 군말없이 먹고 지내야지, 반찬타령은 어림도 없는 시절이었다.

초겨울이 되면, 집집마다 김장을 배추 일이백 포기씩은 해야 예닐곱 식구들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김장을 해서 땅에 갈무리하고, 첫눈 오기 전에 19공탄을 300장 정도 들여놔야 한시름 놓는 것이다. 어려운 가정들은 그날 그날 벌어서, 저녁에 귀가하면서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쌀 1되 사고, 새끼줄로 꿰어주는 연탄 2장 사들고 들어와야, 그날 저녁을 안 굶고, 안 춥게 넘어가는 하루살이 생활을 사는 이웃들이 주변에 흔했다. 굶어 본 기억없이 살았다고 하면 엔간히 中上이상으로 살았다고 보면 맞다.

이번에 남측에서 북측으로 귤을 200톤 보낸다는 뉴스를 들으니, 북측 동포들이 귤을 대하는 심정이 과거 우리 어렵던 시절의 귤과 같지 않을까 싶어 과거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추운 겨울 저녁에 아버지의 손에서 어린 자식들에게 전해지던 차가운 체온을 가진, 그래서 입에 넣으면 더욱 시원했던 그 귤의 감촉과 오묘한 맛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에겐 대단치 않지만, 북에서는 귀한 것이라고 하니, 어려운 동포들에게 한 쪽씩이라도 돌아가겠는가 하는 생각에 계산기를 찾아서 셈을 해보았다.
200ton = 200,000Kg = 200,000,000g 이다. 굴 한 알의 무게를 100g 정도로 보고, 나누기를 해보면 200만 개가 나온다. 이 숫자로는 한 가정에 한 알씩 돌아가기에도 부족하겠구나.
우리네 주변에서는 저렴하게 흔히 사 먹을 수 있는 귤이지만, 저들에게는 지리적, 경제적으로 귀한 과일인데, 그나마 뒤로 빠져나갈 물량까지 감안하면, 함경북도 아오지 주민들까지는 가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산주의, 인민들과 고난도 함께 한다는 강령으로 무장된 노동당 일꾼들이 이번에 어떻게 하나 관심사다. 만약 共産스럽지 못하게 욕심많은 일꾼들이 뒤로 다 빼돌리고, 다시 장마당에 쏟아져 나와서, 이전처럼 돈많은 돈주들만 배두드리며 먹고 뇌물용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이야말로 천민 資本主義의 산 標石이 아닐 수 없다.

북에서 보내온 송이는 균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잘 분배되었다고 믿는다. 남측에서 보내는 귤 200톤이 돈으로는 얼마가 되든, 이 물량이 북의 세계에 투척된 후에 어떤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보이는가 관찰하는 것이, 저 사회를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또 하나의 좋은 실험기회가 된다니 재미있다.

누군가처럼 별거 아닌 먹거리 줘놓고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속 뒤집어 놓는 옹졸함을 보이면 안된다.

아무쪼록 육로나 해상으로 가도 쉬이 갈 것을 화끈하게 비행기에 실어서, 이미 실어 보낸 물건들이니, 잘 분배되어 동포들 입에 한 쪽씩이라도 들어가길 바래본다.

이것이 남측에서 선물로 보내 온, 남측의 특산품이라고, 뉴스보도를 통해서 잘 알려지고, 균등하고 공정한 과정을 통해서 잘 나뉘어 지고, 인민들 입에 들어가 정의롭게 맛을 내주는가 지켜볼 참이다.
“지도원 동무들 아무쪼록 잘 부탁하오.”